[25회 문용주] 변화와 성장, 행복과 보람이 함께한 동거 300일…

사무국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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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와 성장, 행복과 보람이 함께한 동거 300일…

문용주(25회, 시인·참살림수련원 원장)


약 300일에 이르는 긴 동거였다. 물론 혼자만 온 것은 아니었다. 엄마와 같이 왔지만, 엄마 또한 초보였다. 그러니 엄마를 키운 경험이 있는 할머니가 큰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먹고 자고 싸고 우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산 생명의 의식주에 필요한 수많은 생활용품과 장난감들이 없을 수 없으니 하나둘 마련해 가면서 함께 지내다 보니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아기용품만 해도 작은 방 하나를 차지할 정도로 많아졌다.

한 번 움직이려면 해야 할 준비도 많아 하룻밤이라도 다른 집에서 자려면 의식주 전체를 준비해 가야 할 정도로 세심한 배려와 정성이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말이 300일이지 훨씬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훨씬 짧게 느껴지기도 했었다.

이 또한 새 생명과의 동거이니 당연히 감수하면서 지내야 하는 필수 과정이었다.

잠시라도 눈을 딴 곳에 둘 수 없을 정도로 세심하게 돌보지 않으면 혼자 살 수 없는 갓 태어난 존재이다. 

모든 일상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밤에 아기가 울며 잠을 자지 못하면 함께 눈을 붙이지 못하고, 아침에 눈을 떠도 아기가 일어났는지 먼저 확인해야 하며, 일어나기 전이라면 아침조차 함부로 먹을 수 없었다. 

일어나 혼자 지내는 동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기다리고, 들리면 즉각 달려가 안아 주어야 했다. 

어느 정도 커서 일어나도 혼자 울지 않고 놀다 보니 조용히 들어가 '까꿍'으로 인사를 대신하면 웃음으로 맞이하는 그때 기쁨은 컸다. 잠을 푹 잘 잤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분유에서 이유식으로 바뀌면서 낮잠 시간도 줄고 장난감도 바뀌고 윙크도 하는 등 변하는 모습이 귀엽고 빠르니 아이 키우는 재미라 할 만했다.

직접 경험해 봐야 알게 되는 세상의 진짜 모습들 갓난아기에서 아기로, 배냇짓에서 자신의 몸짓으로, 아기엄마에서 엄마로 바뀌는 동안 친정어머니 아버지는 아이가 크는 세월만큼 늙어가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떠나기 전날 누워만 있던 아이가 포복하듯 배밀이 와 엎드려뻗쳐를 거쳐 혼자 앉는 모습까지 보게 되었다. 

물론 자신의 의사를 말로 표현하지는 못하나 거부하거나 손짓 또는 눈짓을 하면서 어른들과 교감을 할 수 있는 시점까지 왔으니 이제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외손자와 함께 하는 시간은 모든 일상의 중심이 손주 키우기였다. 

물론 아기엄마는 키우는 것에 온정성을 쏟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는 키우는 것을 돕는 것 외에 아기엄마를 어머니가 될 수 있도록 의견을 교환하고 조언하며 함께한 시간이었다. 

생활의 중심이 정해졌으니 마음이 하나로 될 수밖에 없고 생길 수 있는 이견들도 목적을 위해 모두 해소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일정 기간 친정에서 아기를 키우는 것이 보다 마음이 편했기에 신사임당의 율곡 선생처럼 우리의 관습으로 전해 내려오고 지금도 그렇게 하는 집안들이 많은 것 같다. 

외손자를 보내고 나서 드는 생각들. 

모든 사람은 이렇게 태어나 크고 자라 어른이 되어 살아가는가 보다. 

자신이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그렇게 길러봐야 그때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는가 보다. 

전철 버스에 임산부를 위한 자리가 왜 있어야 하는지, 유아를 위한 사회 제도는 왜 필요한지, 직접 경험해 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세상의 진짜 모습들. 

실제 경험하지 못하면 모르는 것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제각각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의 진면목은 이렇게 다를진대 나름의 판단을 먼저 함으로써 생기는 오해는 얼마나 많을지, 그로 인해 생기는 갈등 또한 얼마나 많을지.

새로운 존재, 아무것도 모르는 신생아, 그래서 돌보고 보살펴 주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아기, 힘은 들어도 행복하 고 보람찬 동거 300일은 아기는 물론 엄마와 할머니 할아버지의 변화와 성장도 함께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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