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의 숭고한 일생 돌이켜보면 노년의 세븐업에 힘낼 일
길이나 숲에서 나무를 만나면 사람들은 그 나무의 이름이 무언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그 이름은 대개 그 나무의 꽃이나 열매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무궁화나무, 매화나무, 벚나무 등은 꽃으로 이름을 삼은 것이고, 밤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등은 열매를 보고 지은 이름이겠다.
반면에 나무의 잎을 보고 지은 이름은 얼른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하기야 잎만으로는 그 나무의 특성을 나타내기가 어렵기는 하다. 넓은잎나무, 좁은잎나무, 푸른잎나무, 빨간잎나무 해봐야 구별이 되지 않을 테니까. 단지 나무의 종류를 분류할 때 잎의 특성에 따라 활엽수나 침엽수로 부를 뿐이다. 그만큼 꽃이나 열매와 비교해서 나무의 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사람들이 나뭇잎에 눈길을 주는 것은 삭막한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어 연보라 내지는 연둣빛 새순이 새로이 신비롭게 돋아날 때, 그리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삽상한 가을이 찾아와 나뭇잎들이 갖가지 색깔로 물들었을 때일 것이다.
그러다가 서리가 내리고 찬 바람이 불어와 시들고 삭은 잎사귀들을 땅에 떨어뜨리면 그냥 낙엽이라는 이름에 파묻히고 만다. 게다가 요즘은 산성비 같은 환경오염 때문에 낙엽이 빨리 썩지 않아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가 되는 실정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숲을 보거나 연상할 때 떠오르는 초록 이미지가 바로 잎이고, 또 잎이 없으면 꽃이 필 수도 없고 열매가 맺힐 수 없다는 것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뭇잎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어디를 봐도 보일 만큼 너무 많고, 또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끊임없이 돋고 자라고 지는 잎은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흔하게 있고, 또 그렇기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숨 쉬는 공기에서 가장 중요한 산소도 잎이 만들지 않는가!)
나는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새벽 집 가까이 있는 나지막한 산을 오른다. 작은 산이지만 나무가 울창하고 수종도 다양하다. 요즘은 한겨울이라 상록수를 제외하고는 잎이 다 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방에 보이는 것은 무성한 잎사귀들이었다. 너무 많고 또 언제나 가까이 있기에 눈에 잘 띄지 않는 나뭇잎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흡사 사람들 지문처럼 이파리 하나하나의 모양이 다 다르다. 둥글고, 각지고, 뾰족하고, 톱니 같고, 길고, 짧고, 병들고, 벌레 먹고, 싱싱하고…. 벌레 먹은 잎들도 가만히 살펴보면 모양의 개성이 뚜렷해서, 웃고, 울고, 찡그리고, 소리치고, 수줍어하고, 으스대고, 토라지고…. 흡사 개구쟁이들을 모아놓은 교실처럼 시끌벅적(?)하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한때 세븐업(7-Up)이라는 청량음료에 빗대어 ‘노년의 세븐-업’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사람이 늙어갈수록 좀 더 맑고 시원하게(청량하게) 사는 방법을 Up이라는 부사가 붙은 일곱 가지 영어 단어로 표현한 것인데, 내용인즉슨, Cheer Up(명랑하게 살아라.), Clean Up(몸을 깨끗이 해라.), Dress Up(깔끔하게 입어라.), Give Up(포기할 줄 알아라.), Pay Up(가끔 지갑을 열어라.), Show Up(필요할 때는 얼굴을 내밀어라.), 그리고 Shut Up(입을 다물 줄 알아라.)이다. 말하자면 노인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의 잎사귀도 바로 이 일곱 가지 덕목을 지니고 있다.
첫째, 명랑하게 살아라: 나뭇잎은 언제나 명랑하다. 실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소곤대고, 비바람 불어도 몸을 흔들며 웃는다. 뜨거운 뙤약볕에도 씩씩하고, 달 밝은 밤에는 깃든 산새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살아있는 이파리는 항상 명랑하다.
둘째, 몸을 깨끗이 해라: 살아있는 나뭇잎이 지저분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에는 먼지가 쌓이고 때가 끼지만 생나무의 이파리는 언제나 깨끗하다.
셋째, 깔끔하게 입어라: 어쩌다 벌레가 먹거나 병이 생기면 그 이파리는 곧 떨어지고 새잎이 돋는다. 그래서 나무가, 나아가서 숲이 항상 푸르고 싱싱한 것이다. 소나무 같은 사철나무가 늘 푸른 것도 사실은 낡은 잎은 떨어뜨리면서 새잎을 내기 때문이다.
넷째, 포기할 줄 알아라: 이것이야말로 나뭇잎의 아주 큰 덕목 중 하나이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날 줄 알기 때문이다. 낙목한천(落木寒天)의 계절에 일제히 날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생을 마치고 재로 돌아가는 큰스님의 다비식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몇몇 수종은 겨우내 시든 잎이 떨어지지 않는데 이것은 미련 때문이 아니라 다음 해 봄에 나올 겨울눈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다섯째, 가끔 지갑을 열어라: 나뭇잎은 봄이 되어 적당한 때가 오면 겨울눈을 깨워 어김없이 새순을 낸다. 그리고 또다시 때가 오면 정성껏 키운 열매를 내보낸다. 이것보다 더 신비하고 아름답고 보람찬 일이 있을까?
여섯째, 필요할 때는 얼굴을 내밀어라: 이른 봄에 나온 잎사귀가 검은빛이 돌 만큼 튼튼하게 자라면 잎은 다시 그 위에 또는 옆에 연둣빛 얼굴을 내민다. 그래서 나무를 점점 더 크게 키우고 숲을 더 울창하게 만든다.
일곱째, 입을 다물 줄 알아라: 나뭇잎은 결코 자기 자랑을 떠벌리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잎을 틔우고 꽃을 키우고 열매를 맺을 뿐이다.
노인들을 닮은 위와 같은 일곱 가지 덕목도 빼어나지만, 그 무엇보다도 훌륭한 나뭇잎의 덕목은 낙엽귀근(落葉歸根)이겠다. 새순으로 돋아, 잎이 되어, 꽃을 키우고, 열매를 맺은 다음 말없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 흙이 되어 언젠가 떠나왔던 뿌리로 다시 돌아가는 나뭇잎의 일생이야말로 말 그대로 숭고하지 않은가?!
어차피 사람들은 화려한 꽃에 시선이 더 갈 것이고, 탐스러운 열매에 더 구미가 당길 것이다. 그렇더라도 가끔은 별 볼 일 없이 그 이파리가 그 이파리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나뭇잎의 개성 있는 모양도 눈여겨볼 일이고, 때로는 시원한 솔바람이 이는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의 덕목도 생각해봄직하잖은가!
황우상 (19회, 시인· 소설가· 배우· 모바일 화가)
나뭇잎의 숭고한 일생 돌이켜보면 노년의 세븐업에 힘낼 일
길이나 숲에서 나무를 만나면 사람들은 그 나무의 이름이 무언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그 이름은 대개 그 나무의 꽃이나 열매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무궁화나무, 매화나무, 벚나무 등은 꽃으로 이름을 삼은 것이고, 밤나무, 감나무, 대추나무 등은 열매를 보고 지은 이름이겠다.
사실 우리가 숲을 보거나 연상할 때 떠오르는 초록 이미지가 바로 잎이고, 또 잎이 없으면 꽃이 필 수도 없고 열매가 맺힐 수 없다는 것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나뭇잎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어디를 봐도 보일 만큼 너무 많고, 또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른 봄부터 늦가을까지 끊임없이 돋고 자라고 지는 잎은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공기처럼 흔하게 있고, 또 그렇기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숨 쉬는 공기에서 가장 중요한 산소도 잎이 만들지 않는가!)
반면에 나무의 잎을 보고 지은 이름은 얼른 떠오르는 것이 없다. 하기야 잎만으로는 그 나무의 특성을 나타내기가 어렵기는 하다. 넓은잎나무, 좁은잎나무, 푸른잎나무, 빨간잎나무 해봐야 구별이 되지 않을 테니까. 단지 나무의 종류를 분류할 때 잎의 특성에 따라 활엽수나 침엽수로 부를 뿐이다. 그만큼 꽃이나 열매와 비교해서 나무의 잎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사람들이 나뭇잎에 눈길을 주는 것은 삭막한 겨울이 끝나고 봄이 되어 연보라 내지는 연둣빛 새순이 새로이 신비롭게 돋아날 때, 그리고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삽상한 가을이 찾아와 나뭇잎들이 갖가지 색깔로 물들었을 때일 것이다.
그러다가 서리가 내리고 찬 바람이 불어와 시들고 삭은 잎사귀들을 땅에 떨어뜨리면 그냥 낙엽이라는 이름에 파묻히고 만다. 게다가 요즘은 산성비 같은 환경오염 때문에 낙엽이 빨리 썩지 않아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가 되는 실정이기도 하다.
나는 하루도 빼지 않고 매일 새벽 집 가까이 있는 나지막한 산을 오른다. 작은 산이지만 나무가 울창하고 수종도 다양하다. 요즘은 한겨울이라 상록수를 제외하고는 잎이 다 졌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방에 보이는 것은 무성한 잎사귀들이었다. 너무 많고 또 언제나 가까이 있기에 눈에 잘 띄지 않는 나뭇잎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흡사 사람들 지문처럼 이파리 하나하나의 모양이 다 다르다. 둥글고, 각지고, 뾰족하고, 톱니 같고, 길고, 짧고, 병들고, 벌레 먹고, 싱싱하고…. 벌레 먹은 잎들도 가만히 살펴보면 모양의 개성이 뚜렷해서, 웃고, 울고, 찡그리고, 소리치고, 수줍어하고, 으스대고, 토라지고…. 흡사 개구쟁이들을 모아놓은 교실처럼 시끌벅적(?)하다.
뜬금없는 얘기지만, 한때 세븐업(7-Up)이라는 청량음료에 빗대어 ‘노년의 세븐-업’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사람이 늙어갈수록 좀 더 맑고 시원하게(청량하게) 사는 방법을 Up이라는 부사가 붙은 일곱 가지 영어 단어로 표현한 것인데, 내용인즉슨, Cheer Up(명랑하게 살아라.), Clean Up(몸을 깨끗이 해라.), Dress Up(깔끔하게 입어라.), Give Up(포기할 줄 알아라.), Pay Up(가끔 지갑을 열어라.), Show Up(필요할 때는 얼굴을 내밀어라.), 그리고 Shut Up(입을 다물 줄 알아라.)이다. 말하자면 노인들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삶의 덕목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의 잎사귀도 바로 이 일곱 가지 덕목을 지니고 있다.
첫째, 명랑하게 살아라: 나뭇잎은 언제나 명랑하다. 실바람이 불면 살랑살랑 소곤대고, 비바람 불어도 몸을 흔들며 웃는다. 뜨거운 뙤약볕에도 씩씩하고, 달 밝은 밤에는 깃든 산새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준다. 살아있는 이파리는 항상 명랑하다.
둘째, 몸을 깨끗이 해라: 살아있는 나뭇잎이 지저분한 것을 본 적이 있는가? 플라스틱으로 만든 조화에는 먼지가 쌓이고 때가 끼지만 생나무의 이파리는 언제나 깨끗하다.
셋째, 깔끔하게 입어라: 어쩌다 벌레가 먹거나 병이 생기면 그 이파리는 곧 떨어지고 새잎이 돋는다. 그래서 나무가, 나아가서 숲이 항상 푸르고 싱싱한 것이다. 소나무 같은 사철나무가 늘 푸른 것도 사실은 낡은 잎은 떨어뜨리면서 새잎을 내기 때문이다.
넷째, 포기할 줄 알아라: 이것이야말로 나뭇잎의 아주 큰 덕목 중 하나이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날 줄 알기 때문이다. 낙목한천(落木寒天)의 계절에 일제히 날려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 생을 마치고 재로 돌아가는 큰스님의 다비식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몇몇 수종은 겨우내 시든 잎이 떨어지지 않는데 이것은 미련 때문이 아니라 다음 해 봄에 나올 겨울눈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다섯째, 가끔 지갑을 열어라: 나뭇잎은 봄이 되어 적당한 때가 오면 겨울눈을 깨워 어김없이 새순을 낸다. 그리고 또다시 때가 오면 정성껏 키운 열매를 내보낸다. 이것보다 더 신비하고 아름답고 보람찬 일이 있을까?
여섯째, 필요할 때는 얼굴을 내밀어라: 이른 봄에 나온 잎사귀가 검은빛이 돌 만큼 튼튼하게 자라면 잎은 다시 그 위에 또는 옆에 연둣빛 얼굴을 내민다. 그래서 나무를 점점 더 크게 키우고 숲을 더 울창하게 만든다.
일곱째, 입을 다물 줄 알아라: 나뭇잎은 결코 자기 자랑을 떠벌리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잎을 틔우고 꽃을 키우고 열매를 맺을 뿐이다.
노인들을 닮은 위와 같은 일곱 가지 덕목도 빼어나지만, 그 무엇보다도 훌륭한 나뭇잎의 덕목은 낙엽귀근(落葉歸根)이겠다. 새순으로 돋아, 잎이 되어, 꽃을 키우고, 열매를 맺은 다음 말없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 흙이 되어 언젠가 떠나왔던 뿌리로 다시 돌아가는 나뭇잎의 일생이야말로 말 그대로 숭고하지 않은가?!
어차피 사람들은 화려한 꽃에 시선이 더 갈 것이고, 탐스러운 열매에 더 구미가 당길 것이다. 그렇더라도 가끔은 별 볼 일 없이 그 이파리가 그 이파리로 보이겠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나뭇잎의 개성 있는 모양도 눈여겨볼 일이고, 때로는 시원한 솔바람이 이는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의 덕목도 생각해봄직하잖은가!
황우상 (19회, 시인· 소설가· 배우· 모바일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