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공로상 부문 - 김정훈(29회 · 재경동창회 고문) 
청조 동문 여러분 반갑습니다!
재경동창회장직을 최종운 동문에게 인계한 지 어언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여러 가지 상황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은 했습니다만 이렇게 예상도 못 할 정도로 나라와 경제가 어려울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나라 안팎 사정이 좋지 않으니 그 영향이 동문 여러분들께도 미치리라 생각됩니다. 어려운 시기에 청조 동문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힘든 시기를 극복해 냈으면 합니다.
제가 재경동창회장으로 재직 시 16회 김호용 선배님의 도움으로 <청조TV>를 새로 개설했는데 요즘도 간간이 청조인들 소식이 전해져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동문들께서 좋은 의견들을 <청조TV>에 보내셔서 많은 동문들이 서로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특별 공로상을 수여해 주신 청조 동문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을사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최종운 회장 지난해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과학·학술 부문 - 성형진(26회)

재경동창회 제59회 정기총회에서 청조인상 과학학술 부문에 수상을 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를 추천해 주신 26회 동기들, 심사하고 선정해 주신 여러 동문 선·후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보다 훌륭하고 동창회에 기여가 큰 동기들과 후배들이 많은데 제가 이런 큰상을 받는 게 마땅한 일인가 싶습니다.
저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서 유체공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40여 년간 대한민국 산업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 지내왔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난제연구지원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 후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부산고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말해 왔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자랑스러운 학교와 동창회를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전공하고 있는 분야에서나마 학교와 동문에게 도움이 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 과분한 상을 주신 청조인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특별감사패 부문 - 하동근(26회)

청조역사관 설립 작업은 지난 2022년 12월 12일 처음 청조역사관 추진 준비위원회가 소집된 이후 2024년 12월 16일 역사관 추진위원회 최종 마무리 회의까지 만 2년에 걸쳐 진행된 대장정이었습니다.
청조역사관은 추진위원회 위원들의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참여와 봉사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총동창회, 재경동창회, 부발위, 청조장학회 등 동문 조직 사회와 구성원의 성원과 협조, 재정적 지원, 참여가 없었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지난한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유명철 부발위 회장님의 강한 의지가 없었으면 아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과제였습니다.
역사관 설립 기본계획 수립에서부터 최종 개관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수많은 관련 작업을 실질 공사기간 6개월이란 짧은 시간 안에 개관 목표일에 맞출 수 있었던 것은 추진위원 모두가 혼신의 노력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감사패는 저 개인이 아니라 추진위원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려에 깊은 감사와 보람을 느낍니다.
동창회 기여 부문 - 박용진(28회)

먼저 제가 이 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나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만가지를 다 끄집어내어 보았습니다.
4년 전 『청조인』에 기고한 글에서 저의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다섯 가지 중 첫 번째가 부산중·고등학교 입학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훌륭하고 멋진 28회 동기들과 선·후배 동문님들을 만나 제 인생 여정이 맑고 풍성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994년 10월 23일 제5회 청조인 등산대회 참석을 첫 인연으로, 2000년 민족의 명산 백두산 탐방과 2003년 지리산 종주 산행, 2013년 청조산악회 사무총장을 시작으로 2018년 회장에 이르기까지 청조산악회 활동기간은 제 인생의 황금기였습니다. 집행부 활동기간 동안 진도, 제주도, 남도산행을 기획, 실행한 것은 지금도 가슴 뿌듯하게 기억됩니다. 1995년 일산청조인회 모임을 결성하고 총무와 부회장을 거쳐 회장을 역임한 것도 되돌아보면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일산청조인회는 지역 동창회 중 가장 모범적인 동창회로 발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2001년 18답산회 김정주 선배님을 비롯한 선배님들의 압력(?)으로 28 청산회를 발기하고 초대회장을 맡아 매월 산행을 했던 것이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멋지고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산중·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 도무지 그럴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제대로 돼먹지 못한 저를 위해 그동안 함께 해주신 28회 동기님들, 선·후배님들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아주 많이 감사합니다.
문화·학술 부문 - 석한남(31회)

젊은 날은 북한산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변화무쌍한 북한산 풍경에 빠져 살면서 꿈같은 시절의 얘기를 두 차례 개인전으로 펼쳤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 동안 여러 지면에 작품을 실으며 산악 사진가를 자처했습니다.
디지털 사진 시대가 열리면서 풍찬노숙의 서툰 산꾼 생활을 접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저는 부산고 도서반 출신입니다. 졸업 문집에 “어디 외상술 줄 곳은?”이라는 가소로운 제목으로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계를 조명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낯 뜨겁기 그지없습니다.
불혹을 앞두고 저는 한학의 세계에 다시 뛰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쓰인 옛사람들의 묵적(墨跡)이 너무 좋았던 까닭입니다. 10년을 작정한 새벽 공부는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7권의 책을 썼습니다. 경희대, 동아대 등에서 10여 권의 번역본을 내었고 여러 기관에서 강의도 하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얘기는 뺀 『주역』을 쓰고 있습니다.
청조인상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려운 마음부터 먼저 들었습니다. 먼저 수상하셨던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추억하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살고 더 치열하게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저는 청조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분에 넘치는 상을 받게 되어 참 기쁘고 고맙습니다. ‘가문의 영광’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겠지요. 지금 제 마음이 딱 그렇습니다.
기술·경영 부문 - 라종성(33회)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러운 청조인상에 선정해 주신 동창회, 동문 및 동기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청조인상을 수상하게 되어 지난한 기술자의 삶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일본 등 해외로부터 배우고, 도입해야 했던 80년대 중반에 일본의 Motor 기술 선진사에 파견되어 연수를 받고, 이를 국내에 도입해서 자체적으로 기술적 독립을 이루고, 이 역량을 바탕으로 하여 역으로 중국 등 해외 기지로 전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해외에 의존적인 반도체 등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장비, 장치의 국산화를 위해 수없이 많은 실패에 넘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그 어느 장비보다 성능이 앞서는 System을 구현하고, 이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을 때의 기쁨 또한 새삼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어 청조인상이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다시 한번 동문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보다 적극적인 동문 활동을 약속드리면서 수상 소감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특별공로상 부문 - 김정훈(29회 · 재경동창회 고문)
청조 동문 여러분 반갑습니다!
재경동창회장직을 최종운 동문에게 인계한 지 어언 1년이 다 되어 갑니다. 작년 이맘때만 해도 여러 가지 상황이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은 했습니다만 이렇게 예상도 못 할 정도로 나라와 경제가 어려울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나라 안팎 사정이 좋지 않으니 그 영향이 동문 여러분들께도 미치리라 생각됩니다. 어려운 시기에 청조 동문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도우면서 힘든 시기를 극복해 냈으면 합니다.
제가 재경동창회장으로 재직 시 16회 김호용 선배님의 도움으로 <청조TV>를 새로 개설했는데 요즘도 간간이 청조인들 소식이 전해져 위안을 삼고 있습니다. 보다 많은 동문들께서 좋은 의견들을 <청조TV>에 보내셔서 많은 동문들이 서로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특별 공로상을 수여해 주신 청조 동문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을사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최종운 회장 지난해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과학·학술 부문 - 성형진(26회)
재경동창회 제59회 정기총회에서 청조인상 과학학술 부문에 수상을 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부족한 저를 추천해 주신 26회 동기들, 심사하고 선정해 주신 여러 동문 선·후배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보다 훌륭하고 동창회에 기여가 큰 동기들과 후배들이 많은데 제가 이런 큰상을 받는 게 마땅한 일인가 싶습니다.
저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에서 유체공학을 전공한 교수로서 40여 년간 대한민국 산업 발전과 후학 양성을 위해 지내왔습니다. 지금은 은퇴하여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난제연구지원단장을 맡고 있습니다.
부산고등학교를 졸업 후 주위 사람들에게 항상 부산고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말해 왔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 자랑스러운 학교와 동창회를 만들어 주신 모든 분들께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전공하고 있는 분야에서나마 학교와 동문에게 도움이 되도록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저에게 과분한 상을 주신 청조인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특별감사패 부문 - 하동근(26회)
청조역사관 설립 작업은 지난 2022년 12월 12일 처음 청조역사관 추진 준비위원회가 소집된 이후 2024년 12월 16일 역사관 추진위원회 최종 마무리 회의까지 만 2년에 걸쳐 진행된 대장정이었습니다.
청조역사관은 추진위원회 위원들의 적극적이고 희생적인 참여와 봉사가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총동창회, 재경동창회, 부발위, 청조장학회 등 동문 조직 사회와 구성원의 성원과 협조, 재정적 지원, 참여가 없었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지난한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유명철 부발위 회장님의 강한 의지가 없었으면 아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과제였습니다.
역사관 설립 기본계획 수립에서부터 최종 개관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수많은 관련 작업을 실질 공사기간 6개월이란 짧은 시간 안에 개관 목표일에 맞출 수 있었던 것은 추진위원 모두가 혼신의 노력과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감사패는 저 개인이 아니라 추진위원 모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려에 깊은 감사와 보람을 느낍니다.
동창회 기여 부문 - 박용진(28회)
먼저 제가 이 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나를 고민해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만가지를 다 끄집어내어 보았습니다.
4년 전 『청조인』에 기고한 글에서 저의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 다섯 가지 중 첫 번째가 부산중·고등학교 입학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훌륭하고 멋진 28회 동기들과 선·후배 동문님들을 만나 제 인생 여정이 맑고 풍성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994년 10월 23일 제5회 청조인 등산대회 참석을 첫 인연으로, 2000년 민족의 명산 백두산 탐방과 2003년 지리산 종주 산행, 2013년 청조산악회 사무총장을 시작으로 2018년 회장에 이르기까지 청조산악회 활동기간은 제 인생의 황금기였습니다. 집행부 활동기간 동안 진도, 제주도, 남도산행을 기획, 실행한 것은 지금도 가슴 뿌듯하게 기억됩니다. 1995년 일산청조인회 모임을 결성하고 총무와 부회장을 거쳐 회장을 역임한 것도 되돌아보면 참으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일산청조인회는 지역 동창회 중 가장 모범적인 동창회로 발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2001년 18답산회 김정주 선배님을 비롯한 선배님들의 압력(?)으로 28 청산회를 발기하고 초대회장을 맡아 매월 산행을 했던 것이 24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나 멋지고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부산중·고등학교를 나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었을지, 도무지 그럴 수는 없었을 것 같습니다. 제대로 돼먹지 못한 저를 위해 그동안 함께 해주신 28회 동기님들, 선·후배님들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아주 많이 감사합니다.
문화·학술 부문 - 석한남(31회)
젊은 날은 북한산에 매달려 살았습니다.
변화무쌍한 북한산 풍경에 빠져 살면서 꿈같은 시절의 얘기를 두 차례 개인전으로 펼쳤습니다. 그리고 십여 년 동안 여러 지면에 작품을 실으며 산악 사진가를 자처했습니다.
디지털 사진 시대가 열리면서 풍찬노숙의 서툰 산꾼 생활을 접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저는 부산고 도서반 출신입니다. 졸업 문집에 “어디 외상술 줄 곳은?”이라는 가소로운 제목으로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세계를 조명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낯 뜨겁기 그지없습니다.
불혹을 앞두고 저는 한학의 세계에 다시 뛰어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초서 등 다양한 서체로 쓰인 옛사람들의 묵적(墨跡)이 너무 좋았던 까닭입니다. 10년을 작정한 새벽 공부는 20년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7권의 책을 썼습니다. 경희대, 동아대 등에서 10여 권의 번역본을 내었고 여러 기관에서 강의도 하며 살았습니다. 지금은 ‘귀신 씻나락 까먹는’ 얘기는 뺀 『주역』을 쓰고 있습니다.
청조인상에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두려운 마음부터 먼저 들었습니다. 먼저 수상하셨던 선배님들의 발자취를 추억하면서, 앞으로 더 열심히 살고 더 치열하게 써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저는 청조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늘 자랑스러웠습니다. 분에 넘치는 상을 받게 되어 참 기쁘고 고맙습니다. ‘가문의 영광’이란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말이겠지요. 지금 제 마음이 딱 그렇습니다.
기술·경영 부문 - 라종성(33회)
많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러운 청조인상에 선정해 주신 동창회, 동문 및 동기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청조인상을 수상하게 되어 지난한 기술자의 삶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모든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기술을 일본 등 해외로부터 배우고, 도입해야 했던 80년대 중반에 일본의 Motor 기술 선진사에 파견되어 연수를 받고, 이를 국내에 도입해서 자체적으로 기술적 독립을 이루고, 이 역량을 바탕으로 하여 역으로 중국 등 해외 기지로 전파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직도 많은 부분이 해외에 의존적인 반도체 등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장비, 장치의 국산화를 위해 수없이 많은 실패에 넘어지기도 했지만, 결국 그 어느 장비보다 성능이 앞서는 System을 구현하고, 이를 인정받아 국무총리 표창과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을 때의 기쁨 또한 새삼 다시 느낄 수 있게 되어 청조인상이 개인적으로 매우 영광스럽습니다.
다시 한번 동문 여러분들의 성원에 감사드리며, 보다 적극적인 동문 활동을 약속드리면서 수상 소감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