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호부터 연재되어 동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故 박구하 동문(18회)의 '그때 그시절, 그리운 이야기들 - 청조만담'을 리바이벌 연재합니다.


혼자 달리는 천리마 강석우 선생님
수학(대수)을 가르치셨는데 작은 키, 말끔한 얼굴에 고개를 덜렁덜렁하시는 품이 조랑말처럼 보이다가도 말씨를 보면 천리마처럼 빨랐다. 5반을 좋아하시면서도 겉으로는 늘 “이 반을 말할작시면, 수재, 둔재, 미남, 추남의 혼성부대로 재밌는 잡탕맛이란 말이야. 모두 쓸모없는 사람들이란 말이지.” 하고 격하시키길 좋아하셨다. 강의는 조목조목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기보다 글 읽듯 줄줄 “~번은 무리식이니까 이항해서 제곱하면 되고, ~번은 인수분해 하여 치환법을 쓰면 나오고, ~번은 공식을 대입하면 답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실력 없는 학생은 딴 데 가서 알아보라는 주마간산(?)식 강의였다. 월드컵 축구에서 이을용이 정확하게 패스를 해주고 안정환이 실수 없이 헤딩을 하면 골이 안 들어갈래야 안 들어갈 수 없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그때는 우리같이 순진한(?) 학생들이었으니 망정이지 요새 같으면 당장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 성토대상이 되셨을 게다.
우리 때는 우열반이 없었지만 정규 과목을 끝낸 2학기부터는 학교 강의 수준이 돌변하였다. 강 선생님은 그 대표주자로서 학생들의 실력이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이 된다는 전제하에서 입시 교육을 천리마처럼 강행하신 것이다. 이제 와서 입시의 대경주에서 낙오하는 놈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
지옥의 사자 이덕주 선생님
공포의 대상이었던 훈육 선생님. 합기도가 몇 단이라고 들었지만 우리는 한 번도 그 진짜 실력을 보지는 못하였다. 아마도 실력보다는 공갈(?) 펀치가 더 세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이글이글 타는 눈빛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지난번 소개한 바와 같이 학교 인근에서 당구를 치다 들킨 김영철(전 상공부 차관) 군과 그 일당들에게 악명을 유감없이 발휘한 선생님이시다. 당초 현장에서 잡힌 김경욱(외대 독어과 교수) 등 3명의 학생 말고 달아난 학생들을 잡아내기 위하여 얼마나 공갈 협박(?)을 하였는지 모른다. 선생님은 남의 선택 과목 시간(합동강의실)에까지 무려 세 번이나 쳐들어와서 “그날 도망간 놈들,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골로 갈 줄 알아라”고 독을 품었다. 그 독기에 한 누군가의 발설로 들통난 학생들이 모두 무기정학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전에 한 바와 같다. (그때 발설자를 김정수 군으로 소개한 것은 필자의 착각이었음을 밝힌다.)
이렇게 서슬이 시퍼렇던 선생님도 학년말이 되어서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이 되어 별로 두렵지 않았고 선생님도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다. 말년이란 이래서 좋은 것. 별난 아이들이 많았던 우리 5반에 대한 인상을 묻는 말에도 “Clever fellow들인데 무엇 그 이상 할 말이 있겠는가?” 하는 아부성(?) 발언을 서슴지 않으셨다. 재학 중 엄격한 교칙 적용을 주장하셨으나 모두 사람 되라고 한 것 아니었겠는가. 이제는 그렇게 달게 ‘머라해’ 줄 사람도 없으니 새삼 그때 그 시절 호랑이 선생님이 아쉽고 그리운 것이다.
맘씨 좋은 동네 아저씨 김영현 선생님
김 선생님은 체육 선생으로 우리 5반을 특히 좋아하여 副담임을 자처하셨다. 실제로 담임 유수현 선생님과 부담임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표까지 하셨다. 키는 작고 다부지게 생기셨는데 면도를 아니한 채 늘 덥수룩한 채 다니셨다. 김 선생님은 다른 학교에 가셨더라면 대우 받았을 텐데 명문 부산고에 와서 고생하신 분이다. 이놈의 학교는 체육은 뒷전이고 모두가 공부만 한다고 난리니 난감했을 것이다. 딴은 죽어라 공부만 하는 것을 나무랄 수도 없었으니 체력 단련을 제일의로 삼고 있는 선생님의 속이 오죽 뒤집혔을까. 그래도 싫은 내색 않으시고 체육 시간에 우리를 자유롭게 놀도록(?) 방임해 주셨다.
당시 김 선생님이 제일 곤혹스러워 한 것은 훈육부나 다른 반 선생님이 학생을 나무랄 때였다고 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지나치다가도 혼낼 일이 있으면 꼭 부른다는 것이었다. 체육 선생을 무슨 체벌 선생쯤 아는 풍습(?)에 씁쓸할 때가 많다고 하셨다. 내가 알기로 선생님은 ‘술 먹고 돈 없고 집에 늦게 들어갈 때’ 사모님에게 얻어맞을까 봐 겁을 낼 정도로 심약하셨던 분이었는데 말이다.
김 선생님은 우리에게는 선생님이라기보다 그저 푸근한 삼촌이나 형님 같은 분이셨다. 체육 선생답지 않게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우리더러 늘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졸업 즈음해서 “사회에 나가거든 이 소리 저 소리 다 치우고 무엇보다 돈을 많이 벌어라.”고 하시던 말이 기억난다. 또, “후일 만날 때 모른 체 하지 말고 꼭 스승에게 인사하는 사람이 되어주기 바란다.”고도 하셨다. 얼마나 돈에 포원이 지고 정에 굶주렸으면 그랬을까! 뒤에는 야구부장까지 맡아 고생하신 것으로 안다. 언제나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았던 선생님이 오늘따라 왜 이리 보고 싶을까.

●삽화 - 박세형(24회)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
한국의 찰리 채플린 노기석 선생님
2반 담임으로 1조의 영어선생님이시다. 자신은 조금도 웃지 않으시면서 툭툭 내뱉는 촌철살인에 학생들은 배꼽을 잡았다. 만약 그때도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있었다면 단연 그 원조가 되었을 분이다. 2학기 때에 와서야 우리 2조 그룹에도 출강 나오셔서 입시 지도를 해 주셨는데 칠판에 학생들로 하여금 영작문을 하도록 시켜 놓고 다 쓴 뒤에 교정해 주는 방식으로 가르치셨다. 쓰윽 한번 훑어 보고 틀린 부분이 나타나면 그 글을 쓴 학생을 부른다.
“… 이거 원작자 누고? 영어 참, 객지에 와서 고생한대이, 요고는 … 머시고 사무씽구(Something) 다음에 캄마 탁 찍고, 휫치(which)로 쓰모 되겠네. 헤이! 고 다음 타자 나와 주시오!”
아무 감정 없는 사람처럼 혼잣말로 뇌까리며 곁들이는 액션 연기는 꼭 무성영화에 나오는 찰리 채플린이었다. 그 언행만큼 글씨 또한 희화적이어서 칠판에 쓰시는 영어 스펠링 필기체가 독특하였다. 예컨대, ‘I’자 대문자는 보통 밑에서 위로 끌어올려 좌로 내려 뻗는데 선생님은 반대로 좌에서 우로 끌어올려 쓰거나 ‘x’자는 ⊃와 ⊂를 동시에 붙여 쓰셨다. 너희는 ‘바람 풍’ 해도 나는 ‘바담 풍’ 한다는 고집이라나 뭐라나.
진짜 사나이 박용성 선생님
박용성 선생님은 7반 담임으로 국사를 가르치셨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미남형이나 눈에는 늘 불똥이 튀었다.
수업 시간 한 토막. 칠판에 팔을 걷어 지도를 큼지막하게 연해주에서 한반도, 발해만, 중국 동해안을 일필휘지로 그린 뒤 옛날 고구려 땅이던 만주벌에 한자로 쇠금 ‘金’자를 쓰시는데 윗부분 ‘人’자를 길게 꼬리를 늘여 써서 국경을 표시하고 그 밑에 조그맣게 나머지 글자(玉)를 쓰고 누루하치를 호출하신다. 또, 遼河(요하)를 한 일자로 길게 그은 후 “자, 징기스칸 나와요, 징기스칸! 미스터 징기스칸이 말을 타고 짠짠~ 아시아는 물론 유럽대륙을 떨게 한 진짜 사나이. 짠짠~” 이 수업 시간에 가장 열심히 필기를 하던 학생은 만화를 잘 그렸던 김영대 군이었는데 수업이 끝난 뒤에 보면 그의 노트에는 징기스칸은 하나도 안 보이고 당시 서부활극을 주름잡던 영화배우 존 웨인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짠짠~’이라는 의성어가 가져다 준 상상력의 결과였다.
고독한 나르시스 백대인 선생님
4반 담임 백대인 선생님은 수학(기하) 담당이셨는데 그 성씨처럼 얼굴이 늘 백짓장처럼 하얬는데 어깨마저 기우뚱하여 체구가 기하학적으로 비대칭이었다. 눈빛은 60년대 저항시인 김수 영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빛났다.
목소리가 가늘어 조용조용 강의를 하면서 곧잘 혼잣말을 중얼거리셨다. 예컨대 “요고는… (한참 설명한 뒤) 고로 합동이다. 그래 되나? 와 그렇노?” 스스로 자신이 없어 되묻는 건지, 우리가 잘 이해하였을까 걱정 되어 물어보시는 건지 그 초롱초롱 빛나던 눈빛만으로는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청조인』 2003년 1월(166호)
2001년 4월 호부터 연재되어 동문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故 박구하 동문(18회)의 '그때 그시절, 그리운 이야기들 - 청조만담'을 리바이벌 연재합니다.
혼자 달리는 천리마 강석우 선생님
수학(대수)을 가르치셨는데 작은 키, 말끔한 얼굴에 고개를 덜렁덜렁하시는 품이 조랑말처럼 보이다가도 말씨를 보면 천리마처럼 빨랐다. 5반을 좋아하시면서도 겉으로는 늘 “이 반을 말할작시면, 수재, 둔재, 미남, 추남의 혼성부대로 재밌는 잡탕맛이란 말이야. 모두 쓸모없는 사람들이란 말이지.” 하고 격하시키길 좋아하셨다. 강의는 조목조목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기보다 글 읽듯 줄줄 “~번은 무리식이니까 이항해서 제곱하면 되고, ~번은 인수분해 하여 치환법을 쓰면 나오고, ~번은 공식을 대입하면 답이 안 나올래야 안 나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실력 없는 학생은 딴 데 가서 알아보라는 주마간산(?)식 강의였다. 월드컵 축구에서 이을용이 정확하게 패스를 해주고 안정환이 실수 없이 헤딩을 하면 골이 안 들어갈래야 안 들어갈 수 없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그때는 우리같이 순진한(?) 학생들이었으니 망정이지 요새 같으면 당장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 성토대상이 되셨을 게다.
우리 때는 우열반이 없었지만 정규 과목을 끝낸 2학기부터는 학교 강의 수준이 돌변하였다. 강 선생님은 그 대표주자로서 학생들의 실력이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이 된다는 전제하에서 입시 교육을 천리마처럼 강행하신 것이다. 이제 와서 입시의 대경주에서 낙오하는 놈은 어쩔 수 없다는 식이었다.
지옥의 사자 이덕주 선생님
공포의 대상이었던 훈육 선생님. 합기도가 몇 단이라고 들었지만 우리는 한 번도 그 진짜 실력을 보지는 못하였다. 아마도 실력보다는 공갈(?) 펀치가 더 세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 이글이글 타는 눈빛은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렸다.
지난번 소개한 바와 같이 학교 인근에서 당구를 치다 들킨 김영철(전 상공부 차관) 군과 그 일당들에게 악명을 유감없이 발휘한 선생님이시다. 당초 현장에서 잡힌 김경욱(외대 독어과 교수) 등 3명의 학생 말고 달아난 학생들을 잡아내기 위하여 얼마나 공갈 협박(?)을 하였는지 모른다. 선생님은 남의 선택 과목 시간(합동강의실)에까지 무려 세 번이나 쳐들어와서 “그날 도망간 놈들, 이실직고하지 않으면 골로 갈 줄 알아라”고 독을 품었다. 그 독기에 한 누군가의 발설로 들통난 학생들이 모두 무기정학을 당했다는 이야기는 전에 한 바와 같다. (그때 발설자를 김정수 군으로 소개한 것은 필자의 착각이었음을 밝힌다.)
이렇게 서슬이 시퍼렇던 선생님도 학년말이 되어서는 좋은 게 좋다는 식이 되어 별로 두렵지 않았고 선생님도 더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않았다. 말년이란 이래서 좋은 것. 별난 아이들이 많았던 우리 5반에 대한 인상을 묻는 말에도 “Clever fellow들인데 무엇 그 이상 할 말이 있겠는가?” 하는 아부성(?) 발언을 서슴지 않으셨다. 재학 중 엄격한 교칙 적용을 주장하셨으나 모두 사람 되라고 한 것 아니었겠는가. 이제는 그렇게 달게 ‘머라해’ 줄 사람도 없으니 새삼 그때 그 시절 호랑이 선생님이 아쉽고 그리운 것이다.
맘씨 좋은 동네 아저씨 김영현 선생님
김 선생님은 체육 선생으로 우리 5반을 특히 좋아하여 副담임을 자처하셨다. 실제로 담임 유수현 선생님과 부담임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표까지 하셨다. 키는 작고 다부지게 생기셨는데 면도를 아니한 채 늘 덥수룩한 채 다니셨다. 김 선생님은 다른 학교에 가셨더라면 대우 받았을 텐데 명문 부산고에 와서 고생하신 분이다. 이놈의 학교는 체육은 뒷전이고 모두가 공부만 한다고 난리니 난감했을 것이다. 딴은 죽어라 공부만 하는 것을 나무랄 수도 없었으니 체력 단련을 제일의로 삼고 있는 선생님의 속이 오죽 뒤집혔을까. 그래도 싫은 내색 않으시고 체육 시간에 우리를 자유롭게 놀도록(?) 방임해 주셨다.
당시 김 선생님이 제일 곤혹스러워 한 것은 훈육부나 다른 반 선생님이 학생을 나무랄 때였다고 한다. 좋은 일이 있을 때는 지나치다가도 혼낼 일이 있으면 꼭 부른다는 것이었다. 체육 선생을 무슨 체벌 선생쯤 아는 풍습(?)에 씁쓸할 때가 많다고 하셨다. 내가 알기로 선생님은 ‘술 먹고 돈 없고 집에 늦게 들어갈 때’ 사모님에게 얻어맞을까 봐 겁을 낼 정도로 심약하셨던 분이었는데 말이다.
김 선생님은 우리에게는 선생님이라기보다 그저 푸근한 삼촌이나 형님 같은 분이셨다. 체육 선생답지 않게 우리나라 문화와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우리더러 늘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다. 졸업 즈음해서 “사회에 나가거든 이 소리 저 소리 다 치우고 무엇보다 돈을 많이 벌어라.”고 하시던 말이 기억난다. 또, “후일 만날 때 모른 체 하지 말고 꼭 스승에게 인사하는 사람이 되어주기 바란다.”고도 하셨다. 얼마나 돈에 포원이 지고 정에 굶주렸으면 그랬을까! 뒤에는 야구부장까지 맡아 고생하신 것으로 안다. 언제나 마음씨 좋은 동네 아저씨 같았던 선생님이 오늘따라 왜 이리 보고 싶을까.
●삽화 - 박세형(24회) 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
한국의 찰리 채플린 노기석 선생님
2반 담임으로 1조의 영어선생님이시다. 자신은 조금도 웃지 않으시면서 툭툭 내뱉는 촌철살인에 학생들은 배꼽을 잡았다. 만약 그때도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있었다면 단연 그 원조가 되었을 분이다. 2학기 때에 와서야 우리 2조 그룹에도 출강 나오셔서 입시 지도를 해 주셨는데 칠판에 학생들로 하여금 영작문을 하도록 시켜 놓고 다 쓴 뒤에 교정해 주는 방식으로 가르치셨다. 쓰윽 한번 훑어 보고 틀린 부분이 나타나면 그 글을 쓴 학생을 부른다.
“… 이거 원작자 누고? 영어 참, 객지에 와서 고생한대이, 요고는 … 머시고 사무씽구(Something) 다음에 캄마 탁 찍고, 휫치(which)로 쓰모 되겠네. 헤이! 고 다음 타자 나와 주시오!”
아무 감정 없는 사람처럼 혼잣말로 뇌까리며 곁들이는 액션 연기는 꼭 무성영화에 나오는 찰리 채플린이었다. 그 언행만큼 글씨 또한 희화적이어서 칠판에 쓰시는 영어 스펠링 필기체가 독특하였다. 예컨대, ‘I’자 대문자는 보통 밑에서 위로 끌어올려 좌로 내려 뻗는데 선생님은 반대로 좌에서 우로 끌어올려 쓰거나 ‘x’자는 ⊃와 ⊂를 동시에 붙여 쓰셨다. 너희는 ‘바람 풍’ 해도 나는 ‘바담 풍’ 한다는 고집이라나 뭐라나.
진짜 사나이 박용성 선생님
박용성 선생님은 7반 담임으로 국사를 가르치셨다. 목소리가 카랑카랑하고 미남형이나 눈에는 늘 불똥이 튀었다.
수업 시간 한 토막. 칠판에 팔을 걷어 지도를 큼지막하게 연해주에서 한반도, 발해만, 중국 동해안을 일필휘지로 그린 뒤 옛날 고구려 땅이던 만주벌에 한자로 쇠금 ‘金’자를 쓰시는데 윗부분 ‘人’자를 길게 꼬리를 늘여 써서 국경을 표시하고 그 밑에 조그맣게 나머지 글자(玉)를 쓰고 누루하치를 호출하신다. 또, 遼河(요하)를 한 일자로 길게 그은 후 “자, 징기스칸 나와요, 징기스칸! 미스터 징기스칸이 말을 타고 짠짠~ 아시아는 물론 유럽대륙을 떨게 한 진짜 사나이. 짠짠~” 이 수업 시간에 가장 열심히 필기를 하던 학생은 만화를 잘 그렸던 김영대 군이었는데 수업이 끝난 뒤에 보면 그의 노트에는 징기스칸은 하나도 안 보이고 당시 서부활극을 주름잡던 영화배우 존 웨인이 가득 그려져 있었다. ‘짠짠~’이라는 의성어가 가져다 준 상상력의 결과였다.
고독한 나르시스 백대인 선생님
4반 담임 백대인 선생님은 수학(기하) 담당이셨는데 그 성씨처럼 얼굴이 늘 백짓장처럼 하얬는데 어깨마저 기우뚱하여 체구가 기하학적으로 비대칭이었다. 눈빛은 60년대 저항시인 김수 영을 연상케 할 정도로 빛났다.
목소리가 가늘어 조용조용 강의를 하면서 곧잘 혼잣말을 중얼거리셨다. 예컨대 “요고는… (한참 설명한 뒤) 고로 합동이다. 그래 되나? 와 그렇노?” 스스로 자신이 없어 되묻는 건지, 우리가 잘 이해하였을까 걱정 되어 물어보시는 건지 그 초롱초롱 빛나던 눈빛만으로는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청조인』 2003년 1월(16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