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야사[제11화] "헹님, 마 우야겠노"

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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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나이에 같은 해에 P고교를 졸업했지만 중부(權重夫)는 사십이 훨씬 넘은 지금까지도 명호(崔明鎬)를 '헹님(형님)' 으로 부른다. 평소에는 이 자슥 저자슥, 둘도 없는 친구행세를 하다가도 중부가 결정적으로 명호의 지략(智略)이 필요할 때는 '행님, 마 우야겠노', 그러면서 머리를 긁적거리기도 하고 때로는 비굴한 웃음을 헤헤거리면서 '헹님' 으로 부른다. 그때마다 명호는 눈을 부라리든지 어떤 때는 버럭 신경질을 부리기도 하지만 '알았다 그마!' 그러면서 결국은 중부의 간청을 모조리 들어주고만다. 

고등학교 시절에 시험때마다 '헹님 마 우야겠노', 그러면서 두 손으로 오물딱조물딱 몇 번 만두 빚는 시늉만 하면 명호의 답안은 고스란히 중부의 것이 되었고 고교시절의 첫사랑이 성사가 되어서 중부가 지금의 아내를 얻은 것도 순전히 명호의 책략이고 보면 중부는 아마 죽어 황천에 가서도 명호를 '헹님'으로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말이 났으니 중부의 첫사랑 이야기부터 하자.

고교를 졸업할 무렵, 너나 없이 대학 입시로 그렇게 머리통이 터지던 그 무렵의 어느 겨울 저녁 나절에 중부가 또 정신없이 공부에 몰두해 있는 명호를 찾아왔더란다.

"이 자슥아, 대학입시는 칸닝구로 되능기 아이라카이. 이번에는 헹님이 아이라 헹님 저그 아부지라도 안된다."

"그기 아이라 이번에는 내 목숨이 달린 일이다."

"머라꼬? 목숨이 달린 일?"

"그래."

그때 사색이 되어 중부가 볼 멘 소리로 늘어놓는 하소연은 다가오는 기말고사에 컨닝을 좀 하자든지, 그게 정 안되면 이런 미적분(微積分)은 '코사인'으로 푸느냐 아니면 '탄젠트'냐, 이런 과거완료형의 영작(英作)은 'have been'을 써야 하느냐 아니면 have had'냐 그런 시시껄렁한(?) 문제가 아니더란다.

"머라꼬? 가스나?"

"그래. 영주동에 사는 남성똥뽀 2학년인데 그 가스나 때메(때문에) 도대체 입시 부가 안된다 카이"

"아이구, 입시가 아이더라도 니가 언제 공부하던 놈이라서!"

"우쨌거나 헹님, 마 우야겠노."

또 형님 타령을 하면서 중부가 털어놓는 사연인즉슨 우리 P고교 옆동네의 N여고–그때의 P고교생들은 공부에서만은 천하제일을 자부하면서 그야말로 안하무인이요, 유아독존이어서 꽤나 대학 진학율이 괜찮았던 인근의 K여고는 물론 그렇게도 예쁜 여학생들이 많이 다녔지만 대학 진학율은 뭐 그렇고 그렇던 N여고까지 그들은 모조리 똥통학교라는 뜻의 똥뽀라고 불렀다–의 한 학년 아래였던 어느 여학생을 서너 달 전에 우연히 마주친 이후로 더구나 싫은 공부가 그 즈음은 역신사약(逆臣賜藥)처럼 더더욱 싫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래, 말이라도 한번 걸어 봤더나?"

"말이 머꼬. 그카다가 첫 번에 툇자를 묵으믄 우짤라꼬?"

중부는 왕방울 눈을 하며 질겁을 했고 명호는 심드렁해서 이렇게 대꾸를 했다고 한다.

"우짜기는, 그래되믄 깨끗하이 포기를 하고 입시공부나 해야지."

"머라카노? 공부? 그런 소리 마라. 내, 그 가스나한테 툇자를 묵으믄 입시고 머고 그 날로 콱 죽어삐릴기다."

중부의 기색은 비장한 정도를 넘어서 명호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연필깍는 면도칼을 집어들고 주욱 목을 긋는 시늉까지 하더란다. 하던 지랄도 멍석을 깔아주면 안한다더니 지나가던 여학생들한테는 안면이고 체면이고 없이 온갖 짓궂은 짓을 잘만하던 중부가 그때는 상사병이 들어도 아주 목숨을 걸어놓고 골병으로 걸렸더란다.

"그라이 헹님, 마 우야겠노"

그래서 명호는 또 그의 명석한 머리를 쥐어짜기 시작했고 그 이튿날 아침에 중부에게 명쾌한 방안을 내놓았다는데 「뿌리」의 '쿤타킨데'처럼 명호의 아이디어에는 절대 복종을 했던 중부가 그때는 설래설래 고개를 젓더란다.

"야가, 야가… 그기 무슨 소리고?"

"싫으믄 관두고, 일은 저질러놓고 보능기라. 죽어삐릴 각오도 돼있다믄서 그런 짓도 못하겠나?"

"그라믄 틀림없이 되겠나?"

"하모, 발명이라 카는 기 먼 줄 아나? 바로 상식의 허(虛)를 깨는 기라."

사랑을 고백하는 것과 발명이 무슨 상관 관계가 있는 줄은 모르겠지만, 다른 친구면 모를까 중부에게는 누구의 착안(着眼)인데 감히 끝까지 반항을 했겠는가. 그날 저녁, 중부는 명호가 시키는대로 그 여학생의 집 앞을 지키고 있다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그 여학생을 그야말로 상식의 허를 깨고 느닷없이 따귀를 올려붙였단다. 벌건 대낮에 그것도 있는 힘을 다해서 거푸 다섯 대나 말이다. 묻지 마라. 어떻게 되고 자시고가 어디 있었겠는가? 금지옥엽 무남독녀였던 그 여학생의 부모는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을듯이 길길이 뛰었고 끝까지 그 이유에 대해서 묵묵부답이었던 중부는 드디어 양가 부모들끼리 담판이 벌어진 곳에서야 당당하게 고함을 치듯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지는 잘못한 거 없십니더! 그 가스나때메 공부가 안된단 말입니더! 그 정도도 마 다행인 줄 아이소! 지는 그 가스나를 직이삐리고 그래서 사형선고를 받고 형무소에서 대롱대롱 목이 매달리서 죽을라 켓십니더! 와요?"

설마 여학생 따귀 몇대 때렸다고 경찰서 정도면 모를까 형무소는 뭐고 사형선고는 더더구나 말도 아닌 소리였지만 결론부터 얘기하면 중부는 그후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온 그해 가을에 부산에서는 알아주는 재벌이었던 그 무남독녀 집안의 데릴사위로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고, 십여년 무역선장으로 세계 각국을 제 집 변소 들락거리듯이 하다가 처가의 배려로 재작년에 다섯 척의 신조선(新造船)을 건조해서 상선회사(商船會社)를 설립했는데 요즘 들어 우루과이 협상이니 무역 적자니 하며 모두 난리들이지만 권중부의 T상선은 이제 서울에서 알아주는 세무사로 성공한 최명호의 자문을 얻어가며 날로 번창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렇게 볼멘 소리를 하면서.

"그라이 헹님, 마 우야겠노"


<2025. 3월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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